카리브해 섬을 폐허로 만든 카테고리 5 허리케인 ‘어마’가 북상하면서 ‘플로리다 엑소더스’가 시작됐다. 미국 플로리다 동부 해안가의 인구 밀집 지역에 대피령이 내려지자 미국 역사상 최대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8일 현재 영국령 터크스 케이커스에 머물고 있는 어마가 쿠바를 거쳐 주말께 상륙하리라 관측되는 플로리다주는 발 빠르게 대피령을 내렸다. 릭 스콧 플로리다 주지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폭풍이 시작되면 우리는 여러분을 구할 수 없다”며 지금 당장 떠나라고 경고했다. 주말인 9~10일까지 지체하면 플로리다 남부에 강풍과 폭우가 들이닥쳐 대피하기에 너무 늦는다는 얘기였다. <시엔엔>(CNN) 기상전문가 톰 세이터 역시 플로리다의 대피 가능 데드라인이 8일 오전이라며 주의를 환기시켰다.대피령이 내려진 곳은 마이애미데이드, 브로워드, 팜비치, 브레버드, 플로리다키스제도의 행정 중심지인 먼로 카운티 등이다. 먼로 카운티에서는 주민들에게 반드시 떠나라는 대피 명령이 내려진 뒤 8일 오전 모든 병원이 문을 닫았다. 먼로 카운티 책임자인 로먼 게스테지는 “여러분은 기회가 있을 때,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 911에 전화해도 받지 않을 것”이라며 무섭게 경고했다. 이에 따라 먼로 카운티에서만 3만명 이상이 피난을 떠났다.마이애미데이드·브로워드·팜비치 카운티 세 곳만 합쳐도 인구가 600만명이 넘고 이미 50만명 이상이 피난길에 오른 것으로 추산된다. 대피령에 예민해진 주민들이 일단 북쪽으로 올라가려고 쏟아져 나오자 고속도로 곳곳이 평소보다 3~4배 많은 차량으로 꽉 막혔다. <시엔엔>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탈출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카리브해에서 세 개의 허리케인이 동시에 발생해 도서 국가들과 미국 남부, 멕시코를 위협하고 있다. 7일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5등급 허리케인 ‘어마’(가운데)가 쿠바 동쪽에 머물고 있고, ‘호세’가 그 동남쪽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왼쪽 멕시코에는 ‘카티아’가 상륙했다. AP 연합뉴스
카리브해에서 세 개의 허리케인이 동시에 발생해 도서 국가들과 미국 남부, 멕시코를 위협하고 있다. 7일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5등급 허리케인 ‘어마’(가운데)가 쿠바 동쪽에 머물고 있고, ‘호세’가 그 동남쪽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왼쪽 멕시코에는 ‘카티아’가 상륙했다. AP 연합뉴스

플로리다의 주유소 가운데 문을 연 곳은 절반 정도인데, 경찰관들이 주유소 진입 차량을 정리하려고 출동하기도 했다. 기름을 넣으려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기름이 동나는 경우도 많다. 플로리다주는 7일까지 150만갤런(약 568만ℓ)을 공수해왔다. 앞서 허리케인 하비가 강타한 텍사스주 휴스턴 쪽으로 휘발유와 물 공급이 집중된 탓에 생수 품귀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팜비치 카운티의 보카러톤에 사는 로잰 리삭은 7일 밤 남편 및 세 아이와 함께 애틀랜타에 있는 친구 집을 목표로 피난 행렬에 합류했다. 리삭은 도로가 너무 막혀 올랜도의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8일 오전 다시 애틀랜타로 향하는 길에 <시엔엔>과 인터뷰했다. 그는 “지금 시속 20마일(약 32㎞) 정도로 가고 있다”며 “(평소 같으면) 6~7시간이면 가고도 남을 텐데 (길을 나선 지 벌써) 12시간이 다 돼간다”고 말했다.이르면 8일 오후께 플로리다의 항공기 운항이 중단된다. 그 전에 비행기로 플로리다를 탈출하려는 주민들이 공항으로 몰려 한때 국내선 항공권 가격이 3000달러(338만원)에 이르는 등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제트블루항공은 플로리다발 직항노선 운임을 세금을 포함해 편도 99달러(약 11만원)로 제한했으며, 플로리다 경유 노선도 159달러로 묶었다. 아메리칸항공도 오는 10일 이전 판매되는 13일 이전 플로리다 출발 직항노선 요금을 세금 포함 99달러로 제한했다.어마의 위력을 앞서 경험한 카리브해 섬들에서는 최소 17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으나 사망자 수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분점하는 생마르탱에선 5명이 숨졌고, 바부다는 사회기반시설 등 건물 95%가 파괴됐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대다수 지역이 정전된 가운데 6000명 이상이 임시보호소에 머물고 있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미국 기상당국은 어마가 8일 카테고리 4로 등급이 낮아졌지면 여전히 최고 시속 250㎞의 강풍을 동반해 경계를 풀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브록 롱 연방재난관리청장은 “어마는 플로리다를 비롯해 남부 주들을 황폐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어마의 예상 행로 안에 있는 조지아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일부 지역에도 대피령이 내려졌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